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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향수 가득한 방비엥의 사라진 나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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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20-08-2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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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비엥의 나비계곡에 있었던 아름다운 나무다리. 지금은 여행자들의 편리한 통행을 위해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사라져 버렸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개울이 길을 막았다. 바지를 걷으면 무릎까지 찰 정도의 깊이였다. 마을의 깨복쟁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개울 옆에 그림 같은 나무다리가 섰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건너며 개울을 첨벙거리는 아이들을 지긋이 바라다 봤다. 다리도 개울도, 다리를 건너는 사람도 물놀이 하는 아이들도 마치 잘 만든 예술영화의 한 컷처럼 아름다웠다. 나도 그 다리를 건넜다. 건너면서 개울을 내려다 봤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아이들이 더 살가워졌다. 
  내가 라오스를 처음 방문하게 된 계기를 이 다리가 만들어줬다. 방콕 카오산로드의 어느 카페에 앉아 영자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 신문의 레저판에 세상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름다운 다리 사진이 한 장이 풀컷으로 실려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가 인기를 끌던 무렵이었다. 나는 대번에 이 다리에 끌렸다. 더듬더듬 다리의 소재를 파악해보니 인근 국가 라오스의 방비엥이라는 산골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긴 인도여행을 마치고 방콕에서 피로를 풀고 있던 중이었다. 신문을 차곡차곡 접어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가자, 당장. 숙소로 돌아온 나는 가방을 챙겨들고 방콕의 북부터미널로 달려갔다. 늦은 밤 떠나는 국경도시 농카이행 버스에 오른 것은 순전히 이 다리가 인력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종적이 묘연했던 사랑하는 여인의 소재지를 파악한 듯이 혼비백산 라오스로 달려갔다.

                      ↑↑ 쏭강에서 여행자거리로 넘어가도록 만들어둔 나무다리. 얼기설기 엮은 모습이 예술의 경지처럼 보인다.   

  사흘 만에 도착한 방비엥에서 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불문곡직 신문부터 펼쳐보였다. 주인은 강을 넘어 큰 동굴로 가는 길에 이 다리가 있다고 말했다. 긴 여정의 피곤을 잊은 채 강을 건넜다. 다리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즐거움에 잠시라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한 번도 그 사진을 의심하지 않았다. 간혹 사진이 주는 감동이 현실과 엄청난 괴리감이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사진은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 눈 앞에 나타난 다리는 나의 믿음 이상이었다. 사진이 주는 감동에 바람과 햇살, 천진한 아이들, 순박한 사람들이 합쳐지니 감동은 두 배, 세 배로 커졌다.

  내 고향에도 아름다운 다리는 있다. 돌다리도 있고 징검다리도 있다. 시골마을에 있는 나무다리도 더러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방비엥의 나무다리는 달랐다. 두텁고 강단 있는 나무가 아니라 꿀렁꿀렁 삐걱삐걱 제멋대로 놀아나는 얇은 나무판을 잇댄 다리였다. 나무판이 부서지거나 썩으면 또 다른 나무를 갖다 대 땜질을 해뒀다. 아슬아슬한 다리였지만 개울에 풍덩 빠져도 위험할 일은 없었다. 이 다리는 다만 바짓가랑이를 걷는 수고를 덜어주고 작은 수레가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다리는 방비엥 계곡에 또 하나의 기가 막힌 정경을 만들어 내는 화룡점정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얇은 널빤지로 만든 방비엥의 다리.   

  언제였는지 모른다. 다시 찾은 방비엥의 계곡에 그 때 내가 보았던 다리는 사라져 버렸다. 완만한 경사로 흐르던 개울가에 시멘트 둑이 만들어져 있고 다리가 놓여있던 자리에는 자동차나 툭툭이, 혹은 버기카가 전력질주를 해도 좋을 길이 나버렸다. 탐푸캄 앞 물웅덩이인 블루라군을 찾는 여행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방비벵 사람들은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길을 터 준 것이 분명했다. 여행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고마운 일이다.

  또 그 다리 외에도 방비엥에는 기가 막힌 나무다리가 여러 군데 생겨났다. 쏭강을 넘을 때 나무배가 건네주던 수고를 덜기 위해 차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제법 튼튼한 나무다리도 생겼고 얼기설기 나무막대를 지주대로 삼아 널빤지를 엮어 만든 흔들다리도 여러 군데 생겼다. 쏭강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이들 다리들은 멀리서 봐도 아름답고 가까이서 봐도 아름답다. 또 흔들리면서 건너도 아름답다. 오히려 내가 처음 본 다리보다 조형적으로 더 아름다운 다리도 있다. 처음 방비엥에 와 본 사람이라면 지금 생겨난 다리들을 보면서 '이건 다리가 아니라 예술이군'이라고 감탄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 쏭강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과거에는 작은 나룻배로 이 강을 건넜지만 다리가 생기면서 주민들이 훨씬 편리해졌다.   

  하지만 나는 아쉬웠다. 여기 저기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다리가 아니라, 쏭강을 나무배로 넘어 정겨운 강 건너 마을을 지난 뒤 한적한 길에서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나비떼를 만나다가 문득 마주치는 다리를 상상해 보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던 그 소박하고 정겨운 다리 위에서 발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바라보면서 잠시 땀을 식히는 여유를 가져봤다면 나의 이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온갖 유사품이 생겨나, 그 유사품의 성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원조의 그 향수와 위력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가장 순수한 감정으로 만났던 첫사랑이 떠나가고 또 다른 여인이 눈앞에 나타나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심정으로 나는 그 다리를 기억한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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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