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부천 맑은 물·질 좋은 닥나무… 한지공장으로 부유했던 `안동 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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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09-20 16:38본문
↑↑ 안동1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안동1리는 크게 양지(陽地)마을과 야부천(也釜川)마을로 나눠져 있다. 그리고 양지마을에서 야부천으로 가는 길목에 지금은 폐교가 된 양북초등학교 안동분교장이 있는 학교마을도 있다.
양지마을은 조선 중엽에 강찬성(姜讚成)이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루면서 지형이 남쪽으로 향해 항시 따뜻하고 앞으로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평온하고 부유한 마을이 되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안동(安洞)이라고 지었다고 전한다.
↑↑ 안동1리 최고령자 하순연 할머니.
마을을 길게 가로지르면서 흐르는 야부천을 따라 북서쪽 골짜기로 가면 야부천 마을이 나온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의 이 마을에는 밭이 논보다 많다. 이 마을 위쪽의 소두방산이 마치 가마솥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내의 이름을 야부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안동1리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이 마을에서 한때 성업을 이뤘던 한지공장, 즉 지통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한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가 질이 좋았고 야부천의 물이 풍부하고 맑아 한지 생산에 매우 적합한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양북면에서 안동1리에 지통이 가장 많았고 한지의 품질도 최고였다고 전한다.
↑↑ 제2발전소 계측제어부 직원이 안동1리 할머니를 찾아 환담을 나누고 있다.
가장 번창했을 때 안동1리의 지통은 약 5~7개 정도였다고 한다. 한지는 시장에 내다팔면 대부분 현금으로 거래가 돼 어일장이 파하고 시장 주변 대포집에서 한 잔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은 지통과 연관된 사람이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당시로는 다른 마을 사람들은 대포집에서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안동1리는 지통이 한창 번창할 때는 양북면에서 부자마을로 통했다.
↑↑ 안동1리에 남아 있는 고가. 돌담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황태순(79) 야부천마을 경로회장은 "지통이 성업을 이룰 때 이 마을 밭에는 온통 닥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며 "마을의 지통에 마을사람들이 취업해 생업을 해결해 나갔으니 지금으로 치자면 작은 공단과도 같은 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아낙네들은 지통에서 한지를 떼가 인근 도시의 시장에 나가서 팔아 자식들 공부시키기에 넉넉했다고 했다. 그러니 안동1리의 지통들은 당시 양북면 경제구조의 중요한 축이 됐음이 분명하다.
↑↑ 이인석 양지마을 경로회장, 황태순 야부천 경로회장, 양지마을 하성태씨(오른쪽부터)가 지금은 폐교가 된 양북초등학교 안동분교장에 모여 옛일을 회상하고 있다.
이인석(74) 양지마을 경로회장은 "양동 한지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해 어느 시장에 가서도 인기가 높았다"며 "돈다발을 묶는 종이끈으로도 많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통은 대부분 야부천 마을에 있었고 양지마을은 주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며 "지금은 농사지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 늙은이들만 남아 고요한 마을의 역사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했다. 양지마을은 경주이씨 집성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흩어져 몇 가구 남지 않았다.
안동1리는 80가구에 15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양지마을은 약 70명 정도가 살아가고 있으며 그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40명이나 된다. 모든 농촌이 겪는 노령화가 이 마을도 비켜가지 않았다.
↑↑ 안동1리의 함월산 골굴사 입구.
안동1리에는 골굴사가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한 석굴사원이며 원효대사의 마지막 수행처였던 골굴사는 우리나라 선무도를 이어가는 전통사찰이다. 한때 이 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지만 지금은 뜸한 편이라고 한다. 골굴사 주차장에는 이 마을 할머니들이 지역의 농산물과 산나물을 판매하는 작은 시장이 있었는데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자 그 시장도 이제 사라지고 없다.
마을 최고령자인 하순연(91) 할머니는 "이 마을은 야부천의 물이 맑고 공기가 좋아 농사짓고 살기에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며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어 아들을 키우며 평생 무탈하게 산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 안동1리를 가로지르는 야부천.
안동1리의 원성원전 자매부서는 제2발전소 계측제어부다. 김진섭 주임은 "안동1리는 마을 이름처럼 평안하고 아름다운 마을로 주민들도 매우 온화해 항상 찾아뵐 때마다 편안한 외갓집에 방문한 느낌"이라며 "한지공장이 번창하던 시절의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안동1리는 크게 양지(陽地)마을과 야부천(也釜川)마을로 나눠져 있다. 그리고 양지마을에서 야부천으로 가는 길목에 지금은 폐교가 된 양북초등학교 안동분교장이 있는 학교마을도 있다.
양지마을은 조선 중엽에 강찬성(姜讚成)이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루면서 지형이 남쪽으로 향해 항시 따뜻하고 앞으로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평온하고 부유한 마을이 되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안동(安洞)이라고 지었다고 전한다.
↑↑ 안동1리 최고령자 하순연 할머니.
마을을 길게 가로지르면서 흐르는 야부천을 따라 북서쪽 골짜기로 가면 야부천 마을이 나온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의 이 마을에는 밭이 논보다 많다. 이 마을 위쪽의 소두방산이 마치 가마솥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내의 이름을 야부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안동1리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이 마을에서 한때 성업을 이뤘던 한지공장, 즉 지통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한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가 질이 좋았고 야부천의 물이 풍부하고 맑아 한지 생산에 매우 적합한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양북면에서 안동1리에 지통이 가장 많았고 한지의 품질도 최고였다고 전한다.
↑↑ 제2발전소 계측제어부 직원이 안동1리 할머니를 찾아 환담을 나누고 있다.
가장 번창했을 때 안동1리의 지통은 약 5~7개 정도였다고 한다. 한지는 시장에 내다팔면 대부분 현금으로 거래가 돼 어일장이 파하고 시장 주변 대포집에서 한 잔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은 지통과 연관된 사람이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당시로는 다른 마을 사람들은 대포집에서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안동1리는 지통이 한창 번창할 때는 양북면에서 부자마을로 통했다.
↑↑ 안동1리에 남아 있는 고가. 돌담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황태순(79) 야부천마을 경로회장은 "지통이 성업을 이룰 때 이 마을 밭에는 온통 닥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며 "마을의 지통에 마을사람들이 취업해 생업을 해결해 나갔으니 지금으로 치자면 작은 공단과도 같은 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아낙네들은 지통에서 한지를 떼가 인근 도시의 시장에 나가서 팔아 자식들 공부시키기에 넉넉했다고 했다. 그러니 안동1리의 지통들은 당시 양북면 경제구조의 중요한 축이 됐음이 분명하다.
↑↑ 이인석 양지마을 경로회장, 황태순 야부천 경로회장, 양지마을 하성태씨(오른쪽부터)가 지금은 폐교가 된 양북초등학교 안동분교장에 모여 옛일을 회상하고 있다.
이인석(74) 양지마을 경로회장은 "양동 한지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해 어느 시장에 가서도 인기가 높았다"며 "돈다발을 묶는 종이끈으로도 많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통은 대부분 야부천 마을에 있었고 양지마을은 주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며 "지금은 농사지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 늙은이들만 남아 고요한 마을의 역사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했다. 양지마을은 경주이씨 집성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흩어져 몇 가구 남지 않았다.
안동1리는 80가구에 15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양지마을은 약 70명 정도가 살아가고 있으며 그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40명이나 된다. 모든 농촌이 겪는 노령화가 이 마을도 비켜가지 않았다.
↑↑ 안동1리의 함월산 골굴사 입구.
안동1리에는 골굴사가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한 석굴사원이며 원효대사의 마지막 수행처였던 골굴사는 우리나라 선무도를 이어가는 전통사찰이다. 한때 이 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지만 지금은 뜸한 편이라고 한다. 골굴사 주차장에는 이 마을 할머니들이 지역의 농산물과 산나물을 판매하는 작은 시장이 있었는데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자 그 시장도 이제 사라지고 없다.
마을 최고령자인 하순연(91) 할머니는 "이 마을은 야부천의 물이 맑고 공기가 좋아 농사짓고 살기에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며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어 아들을 키우며 평생 무탈하게 산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 안동1리를 가로지르는 야부천.
안동1리의 원성원전 자매부서는 제2발전소 계측제어부다. 김진섭 주임은 "안동1리는 마을 이름처럼 평안하고 아름다운 마을로 주민들도 매우 온화해 항상 찾아뵐 때마다 편안한 외갓집에 방문한 느낌"이라며 "한지공장이 번창하던 시절의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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