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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군 서라벌연가] 평생 경주 하늘을 지켜온 하얀 `낮달` 서영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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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희군 작성일20-09-1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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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조희군나는 바위가 되어
경주의 하늘 아래 바위가 되어
천둥이 지나간 골짝을 타고 앉아
말씀보다 강한 뭇소리들을 삼키며
하늘만 지키는 벙어리 같이
나는 눈만 껌벅거리며 살렵니다.

  (중략)
월성 언덕빼기 솔숲 같은
내 머리칼이나 만지며
머리 위에 하늘처럼
날 부른 문을 향해
입술보다 더 큰 귀를 맞대며
살렵니다.
 -서영수,'경주의 바위'중에서
 
  "동리, 목월 선생이 걸었던 길을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간절하게 너만의 글을 써봐라."
 
  지금은 없어진 시계탑사거리 2층 다방에 마주 앉아 커피가 다 식도록 문학을 이야기하며 어린 제자인 내 등을 두드려 주시던 동전(東田) 서영수(1937-2020) 시인. 사람들은 그를 경주가 낳은 '경주의 시인'이라 부른다.
 
  동전이라는 호는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주신 이름이다. 1970년대 초 동리 선생과 반월성을 다녀오다가 첨성대 옆에서 "너도 호를 갖거라"고 하시고는 상경하신 뒤 붓으로 쓴 '동전(東田)'이라는 호를 보내셨다고 한다. 동전이란 '동쪽 마을' 곧 고향을 가리킨다.
 
  선생의 안태고향은 경주시 건천읍 오봉산 밑 신평리다. 다섯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만주로 가서 해방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와 안강 외갓집에서 살았다. 안강제일국민학교 1회로 입학해 4학년 때 계림국민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선생은 이때를 회고하며 "낯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경주중학교 3학년 때 제1회 서라벌예술제에서 중·고등부를 통틀어 장원을 차지했으며, 중학교 3학년 말에는 전국 문학청년들의 로망이었던 제2회 학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선생이 경주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마침 청마 유치환 시인이 경주중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날이었다. "나는 청마 시인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으나 보답을 못했다"고 늘 아쉬워했으나 선생은 학창시절 진주예술제 등 전국 백일장에 참가하여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백일장에 참가하는 날이면 남의 집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아들 손에 용돈을 챙겨주시던 어머니의 고마움을 잊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매주 수요일 오후 두 시면 작품을 써서 교장실을 찾아 청마 시인으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았다. 이런 도움에 힘입어 학비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던 그 시절에 선생은 문예장학생으로 졸업했으며, 청마 시인 추천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시절 동리 선생이 학장으로 계셨고, 염상섭 서정주 선생의 지도를 받았다. 시집 '엊저녁 달빛' 말미에 "청마의 입김과 목월의 사랑, 미당의 아낌을 받은 학생이었다"고 회고했다.
 
  선생은 대구일보(1956), 영남일보(1957), 세계일보(1964)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1972년 '현대시학'을 통해 목월 선생 추천으로 등단했다. 서라벌예대 졸업 후에는 광주에서 1년여 교편을 잡은 뒤 경주 근화여중·고와 경주중 경주고에서 교육자로 평생을 보냈다. 특히 경주고에서는 옥돌문학회 지도교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제자 문인들을 배출했다. 언제나 문학 이야기를 즐겼고 좋은 글을 많이 쓰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경주에 뿌리 내린 선생은 청마의 제자로 스승의 뜻을 이어가고자 토함산 입구에 청마시비를 세웠고, 동리와 목월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동리목월문학관의 산파 역할도 했다. 최근 복원된 경주읍성의 상량문을 지었고 보문호수 명활산성 쪽 도로변에 선생의 '보문송' 시비가 세워졌다. 오늘의 경주문학이 있기까지 선생의 수고와 땀은 곳곳에 배어 있다. 그의 시처럼 선생은 고향 경주의 하늘을 평생 지켜온 하얀 '낮달'이었다.
 
  서영수 선생은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이미 시집 '별과 야학'(1958)을 펴냈고, '낮달', '동전시초', '경주 하늘', '선도산 일기', '엊저녁 달빛', '바람의 고향' 등을 펴냈다. 선생은 경주문협 지부장, 경북문협 지회장, 한국문인협회와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중앙위원, 경주예총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경북문화상(1986), 금오대상(1988), 금복예술상(1991), 한국예술문화공로상(1991), 경주시문화상(1992), 국민훈장석류장, 한국문협 한국문학상(2012) 등을 수상했다. 선생께서 지난 8월 26일 작고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시인 조희군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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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