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족들은 돌고래, 성게, 복어요리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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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20-09-07 17:39본문
↑↑ 경주 서봉총 남분 큰항아리 내부 동물 유체 발견 모습.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경북신문=장성재기자] 1500년 전 신라의 왕족들은 돌고래와 성게, 남생이, 복어 요리 등 호화로운 식생활을 즐기고 제사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7일 일제가 조사한 경주 서봉총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재발굴한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간행하고 이와 같은 조사성과를 발표했다.
↑↑ 사진 왼쪽 복어 동물 유체와 오른쪽 남생이 동물 유체.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서봉총 남분의 둘레돌에서 조사된 큰항아리 안에서 동물 유체(발굴에서 출토되는 동물 생태물로 뼈, 이빨, 뿔, 조가비 등을 말함)들이 많이 나와 당시 제사 음식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재발굴의 독보적인 성과”라며 “큰항아리 안에서 종과 부위를 알 수 있는 동물 유체 총 7700점 확인됐고 이 중 조개류 1883점, 물고기류 5700점이 대다수지만 아주 특이하게 바다포유류인 돌고래, 파충류인 남생이와 함께 성게류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 성게 동물 유체.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 연구사는 또 “이밖에도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다”며 “이번에 확인된 동물 유체들은 신라 무덤제사의 일면을 밝힐 수 있는 정보이기도하지만 한편으로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동물 유체에서 연상되는 복어 요리, 성게, 고래 고기는 당시 신라 왕족들이 아주 호화로운 식생활을 즐겼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라며 “뿐만 아니라 조개는 산란기 때 독소가 있어 식용하지 않는 점, 또 많이 확인된 청어와 방어의 회유시기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은 대부분 가을철에 포획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와 함께 이 제사가 무덤 축조 직후에 실시된 점을 고려하면 서봉총의 남분은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향후 서봉총 북분과 남분의 주인공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 돌고래 동물 유체. 사진제공=문화재청
경주 서봉총은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신라 왕족의 무덤 중 하나로 서기 500년 무렵에 만들어졌다. 서봉총은 두 개의 봉분이 맞닿은 형태인 쌍분으로 먼저 만들어진 북쪽 무덤에 남쪽 무덤이 나란히 붙어 있다. 북분은 1926년에, 남분은 1929년에 각각 발굴됐다. 무덤 이름은 당시 스웨덴(瑞典) 황태자가 조사에 참여한 것과 봉황(鳳凰) 장식 금관이 출토된 것을 기념해 서봉총(瑞鳳塚)으로 붙여졌다.
서봉총은 금관을 비롯해 다수의 황금 장신구와 부장품이 출토되는 등 학술적 가치가 빼어난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제는 발굴보고서를 간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국립중앙박물관은 2014년 서봉총 출토품 보고서를 간행하고 2016부터 2017년까지 서봉총을 재발굴한 후 이번에 그 성과를 담은 유적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다.
↑↑ 경주 서봉총 발굴 모습(2017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대환 연구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재발굴은 일제가 밝히지 못한 무덤의 규모와 구조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일제는 북분의 직경을 36.3m로 판단했으나 재발굴 결과 46.7.m로 밝혀져 당시 조사가 잘못됐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서봉총의 무덤 구조인 돌무지덧널무넘(적석목곽묘)의 돌무지는 금관총과 황남대총처럼 나무기둥으로 만든 비계 틀을 먼저 세우고 쌓아올렸음이 최초로 확인됐다”며 “뿐만 아니라 무덤 둘레돌에 큰항아리를 이용해 무덤 주인공에게 음식을 바친 제사 흔적이 고스란히 발견돼 이번 재발굴을 통해 당시 신라에서는 무덤 주인공을 위해 귀한 음식을 여러 개의 큰항아리에 담아 무덤 둘레돌 주변에 놓고 제사지내는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제사는 일제강점기 조사에서도 확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역사기록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연구사는 “서봉총 재발굴은 일제가 확인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을 조사하는 뜻깊은 기회가 됐고 제사와 동물 유체를 통해 신라사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봉총의 발굴 성과를 적극 활용해 전시 등으로 공개하고 학계와 대중에게 신라 왕족의 무덤을 이해하는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연구를 심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경북신문=장성재기자] 1500년 전 신라의 왕족들은 돌고래와 성게, 남생이, 복어 요리 등 호화로운 식생활을 즐기고 제사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7일 일제가 조사한 경주 서봉총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재발굴한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간행하고 이와 같은 조사성과를 발표했다.
↑↑ 사진 왼쪽 복어 동물 유체와 오른쪽 남생이 동물 유체.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서봉총 남분의 둘레돌에서 조사된 큰항아리 안에서 동물 유체(발굴에서 출토되는 동물 생태물로 뼈, 이빨, 뿔, 조가비 등을 말함)들이 많이 나와 당시 제사 음식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재발굴의 독보적인 성과”라며 “큰항아리 안에서 종과 부위를 알 수 있는 동물 유체 총 7700점 확인됐고 이 중 조개류 1883점, 물고기류 5700점이 대다수지만 아주 특이하게 바다포유류인 돌고래, 파충류인 남생이와 함께 성게류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 성게 동물 유체.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 연구사는 또 “이밖에도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다”며 “이번에 확인된 동물 유체들은 신라 무덤제사의 일면을 밝힐 수 있는 정보이기도하지만 한편으로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동물 유체에서 연상되는 복어 요리, 성게, 고래 고기는 당시 신라 왕족들이 아주 호화로운 식생활을 즐겼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라며 “뿐만 아니라 조개는 산란기 때 독소가 있어 식용하지 않는 점, 또 많이 확인된 청어와 방어의 회유시기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은 대부분 가을철에 포획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와 함께 이 제사가 무덤 축조 직후에 실시된 점을 고려하면 서봉총의 남분은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향후 서봉총 북분과 남분의 주인공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 돌고래 동물 유체. 사진제공=문화재청
경주 서봉총은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신라 왕족의 무덤 중 하나로 서기 500년 무렵에 만들어졌다. 서봉총은 두 개의 봉분이 맞닿은 형태인 쌍분으로 먼저 만들어진 북쪽 무덤에 남쪽 무덤이 나란히 붙어 있다. 북분은 1926년에, 남분은 1929년에 각각 발굴됐다. 무덤 이름은 당시 스웨덴(瑞典) 황태자가 조사에 참여한 것과 봉황(鳳凰) 장식 금관이 출토된 것을 기념해 서봉총(瑞鳳塚)으로 붙여졌다.
서봉총은 금관을 비롯해 다수의 황금 장신구와 부장품이 출토되는 등 학술적 가치가 빼어난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제는 발굴보고서를 간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국립중앙박물관은 2014년 서봉총 출토품 보고서를 간행하고 2016부터 2017년까지 서봉총을 재발굴한 후 이번에 그 성과를 담은 유적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다.
↑↑ 경주 서봉총 발굴 모습(2017년).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김대환 연구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재발굴은 일제가 밝히지 못한 무덤의 규모와 구조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일제는 북분의 직경을 36.3m로 판단했으나 재발굴 결과 46.7.m로 밝혀져 당시 조사가 잘못됐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서봉총의 무덤 구조인 돌무지덧널무넘(적석목곽묘)의 돌무지는 금관총과 황남대총처럼 나무기둥으로 만든 비계 틀을 먼저 세우고 쌓아올렸음이 최초로 확인됐다”며 “뿐만 아니라 무덤 둘레돌에 큰항아리를 이용해 무덤 주인공에게 음식을 바친 제사 흔적이 고스란히 발견돼 이번 재발굴을 통해 당시 신라에서는 무덤 주인공을 위해 귀한 음식을 여러 개의 큰항아리에 담아 무덤 둘레돌 주변에 놓고 제사지내는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제사는 일제강점기 조사에서도 확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역사기록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연구사는 “서봉총 재발굴은 일제가 확인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을 조사하는 뜻깊은 기회가 됐고 제사와 동물 유체를 통해 신라사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봉총의 발굴 성과를 적극 활용해 전시 등으로 공개하고 학계와 대중에게 신라 왕족의 무덤을 이해하는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연구를 심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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